중국지역연구 Vol.8 No.4 pp.139-166
https://www.doi.org/10.34243/JCAS.8.4.139
동아시아 세력변화를 통해 본 청일전쟁의 지정학적 기원 – 청과 러시아, 일본과의 영토조약을 중심으로 -
Key Words : The first Sino-Japanese war,Geopolitical perception,Territorial disputes,Change of power in East Asia,Modern treaty
Abstract
일반적으로 청일전쟁의 원인은 한반도에서 조선을 둘러싼 청과 일본의 갈등이 격화 되어 일어난 군사적 충돌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시각은 서구열강의 침탈에 쇠퇴해진 청과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청의 쇠퇴를 가져온 것도, 일본의 근대를 가져온 것도 서구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동아시아 전통의 중화질 서의 종말을 가져온 청일전쟁은 전통과 근대의 대결이라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보다 시야를 확장하면 청일전쟁은 그 이전부터 누적되어 온 동아시아 지정학 적 세력 변화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은 청일전쟁의 원인이 아닌 기원을 찾는 데 있다. 청일전쟁의 기원은 17세기 동아시아에 새롭게 등장한 러시아와 만주족의 청 그리고 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러시아의 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로 의 동진과 서진의 결과 청과 일본은 모두 러시아와 근대적 영토조약을 최초로 체결하였 다. 러시아의 동진과 남하는 200여 년의 장시간에 걸쳐 일어났으며 이 과정에서 청과 일본의 지정학적 인식 또한 서서히 변화되어갔다. 특히 이리사건과 대만사건으로 상징되는 러시아와 일본의 근대적 영토 쟁탈은 청의 지정학적 변화에 극적인 계기를 가져왔다. 19세기 중국은 러시아와 일본의 이 같은 지 정학적 도전에 강한 자극을 받았고 이는 양무파들의 해방-육방논쟁으로 이어졌다. 해방 -육방의 전제는 러시아와 일본을 청의 일차적인 위협으로 인식하였다는 점이다. 결국 중국의 지정학적 변화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서구 열강이 아니라 영토를 인접하고 있었던 역내 국가 러시아와 일본이었다. 러시아와 일본의 영토적 위협은 청으로 하여금 조선에 대한 속국화전략으로 나타났고 이것이 결국 청일전쟁을 낳는 원인이 되었다.